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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을 다녀와서...

old articles 2006/07/15 21:17 그린비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갑자기 준비된 여행이다 정말 생각하지 않았던 여행이다

새벽에 축구중계로인하여 한 두시간 눈을 부치고 일어났다

여행을 가는날이라 그런지 나답지 않게 설레인다

축구 중계를 보는둥 마는둥하면서 여행가방에 짐을 챙기고

장관의 배웅을 뒤로한체 집을 나섰다

장관에게 미안한 맘에 뒤통수가 간지럽다 일행과 같이 떠니기로한

장소에 도착하니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여행 총인원은 18명으로 모두부부동반

이고 오직 2명만 단독여행이다 그중에 6명은 별도비행기좌석과 별도호텔에서

묵으며 몇군데만 같이 동행하고 귀국 일정도 다르게 여행사와 계약을 했다

인천 공황이 개항하고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라 좀 일찍 출발을 했다

또한 좀 걱정이된다 우리별도 인원 6명은 무두 70이 넘늠 분이다 나혼자만

어리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수속 하면서 모시고 가야하는 부담 때문에....

공황 약속 장소 에도착하니 모두들 나와 있었다 득별히 여행사 사장 정여사가

동행하겠다고 나왔다 일단 개별 여행자수속은 내가 하기로하고 나머지여행자는

정사장이 하기로 하고 수속을 맞치고 잠시 환전소에서 딸라100불과 중국원화2000원

을 바꿔다 나에게는 여행자 수표가 있어서 조금씩만 바꿔다

우리일행을 모시고 귀빈 휴게실에 들려아침대용으로 과일 과 음료수로 시간을

보내다 비행기 올랐다  이젠 정말 중국 여행이 시작 되었다

비행 시간 짧은 시간 이라 그런지 C 크라스좌석이 많이 비여 있었다

기내식을 먹으며 몇잔의 술로 시간을 보내니 벌써 북경 공황에 진입한다는

방송에 5명의 입국 카드를 모두 적어 나누워주니 맘이 홀가분하다

입국장도 단체 와 개별 입국장이 다르다 처음 여행자도 있고 하니 같이 몰려

움직인다 아니나 다를까 한 아줌마가 통관을 못하고 나를 부른다 가보니 기내에서

써준 입국카드가 없다 남편을 주었는데 먼저 그냥 가지고 나갔다 한다 졉!

그렇게 신신 당부 했는데...

짐을 찾아 나오니(짐검사를 중간 중간만하고 그냥 통관한다) 흰종이에 여행사이름을

들고 있는현지 가이드가 방갑게 맞는다 또 한편 에는 내이름 석자를든 소녀도....

잠시 인원을 체크하고 가이드가 안내 하는광광 버스를타고 우선 식당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 되었다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는 조선족으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김인택이라고 소개하는데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하는의문이 들정도다 또 별도 우리팀안내인 역시 방혜련이라는

조선족 소녀 가 소개 되였다

하늘은 태양을 볼수가 없다 황사현상이고 또한 날씨도 좋은날은 아니다

기온은 한국과 같은것같다 북경 공항은 구공황과 신공황이 붙어 있다 신공황은

99년도 개항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나도 잘모르겠다 하여튼 모든 국제

항공취급은 신공황에서 하고 있었다 또한 공항앞에는 리무진 택시등만 있고

일반 버스는 없는것같았고 시내까지는 약 40분정도 걸린다

북경(BEIJING)은 하북의 평야 산기슭에 있는대도시이며 천년의 왕도이며 인구는

약 850만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요즘은 인구가 증가 한다고 한다

뭐 북경에 대한 역사는 야기 안해도 요나라에서부터 청나라 그리고 문화혁명과

천안문사태와 지금이리르기 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을것이고 한마디로 북경은 변하고

있었다 근대화 물결이 높은 빌딩과 옛건물이 잘 조화이루며 역시 중국인답다

중국은 넓이 960평방미터이고 인구 13억 세계 5분의 일의 인구가 중국 땅에 삽니다.

대만을 비롯하여 56개의 소수민족들로 나라를 구성하고 있으며 7%의조선족이

190만 명이 살고 있답니다.

이곳에서는 주의해야 할것이 몇가지 있단다

첫째 여권을 잘 챙겨야합니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한 달 이상 중국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권 1장에 우리나라돈으로 800만원에서 1000만원정도에 거래

된다는군요

둘째 돈지갑을 잘 챙기셔야합니다.

셋째 여기 물은 너무 오염되어 수도 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

100도 이상 끓인 물이나 녹차는 마셔도 됩니다.

우리나라 시간과 1시간 차이가 난다 여행 시작부터 1시간을 젊게 사는것같은 기분에

정말 설레인다

관광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중국 여행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도 귀에 들어오질 안는다

창가에 스쳐 지나가는 중국의 모습 그냥 설레이기만 하다

시내로 들어 가는길이 가이드말론 고속도로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외각 순환

도로처럼 보인다 차도 밀리고 속도도 한 50-60 키로 정도로 달리니....

시내에 접어드니 일단 도로 옆 자전거 전용 도로에 많은 자전거 행열..

곡예 하는것처럼........

남녀 노소가 정말 잘도탄다

또한 시내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가 없는 것 같다 차와 사람과 자전거와 함께 어울려 잘도 피해다닌다. 그래도 교통사고가 없다니...일단 자동차도 속도가 없으니 잘도 피해다닌다

중국인은 준법정신이 없는 것같다 운전자와 보행자는 서로가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신호를 지키지 않는 느낌이다.

운전자는 중앙선을 침범하고 보행자를 경고음으로 밀쳐내며 달린다

보행자는 복잡한 도로 한가운데로 태연하게 가로질러간다.

그 속에 자전거 행렬도.....

그렇다고 운전자는 욕을 하거나 신경질을 내지 않고 그냥 태연하게 운전하는 것을 보니

정말 만만디 라는 것이 실감나는 풍경이다

그리고 시내에는 일반 버스와, 트롤리 버스, 미니 버스, 택시,이층 버스, 자가용이 달린다

버스 앞에는 숫자와 행선지를 적은 것 같은데 주로 한문이 읽지도 못하는 약자라

한문 세대에 생활한 우리 일행도 못 알아본다...

어느덧 버스는 대사관 골목을 지나 식당에 다달았다

차에서 내리니 잡상인 달려든다  가방을 하나 메고 조잡한 물건을 내밀며 달려드는데

매우 끈질기다 한국돈도 받는다하면서 접는 부채 5개에 한국 돈 만원에 준다며 식당 문 앞까지 따라온다. 식당에 들어서니 주인이 한국 사람이라며 반긴다. 간판을 보니 춘천갈비집이라고 한글과 한문으로 써있다. 한마디로 웃긴다 중국에 와서 한국 식당이라니...

요리가 나오는데 한국식도 아니요 그렇다고 중국식도 아닌 완전히 국적 없는 요리가 나온다

기내에서 먹은 식사도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 몇 명은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맥주 청도맥주(칭따오피지우)를 청하여 땅콩이 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삶은 것도 아닌 요리에 안주 삼아 점심을 때우고

우리 일행은 천안문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천안문에는 주차할 수가 없어서 한 5분을 걸어 갔다

천안문은 명나라 때 만들어져서 그때는 승천문이라 불렀는데 청나라 때 개축하여 천안문이라 불렀다한다

문루 위에는 중국의 휘장이 장식되어 있고 5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에는 모택동 사진이 걸려있고 문 앞에는 수로가 있고 돌로 만든 5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고 다리 양쪽에는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양쪽에는 스텐드가 있는데 국가 행사 때 지위순으로 앉는다 한다

천안문광장

안내자 말로는 세계 최대 넓이라 하는데 내 생각으론 우리 여의도 광장이 더 큰 것 같다

약 40만 평방 메타에 100만명 수용 능력이 있다고 한다 가끔 TV에서 자주 나오는 천안문

사건 1089년 5월 학생 시민이 데모하다가 6월4일 인민 해방군이 탱크로 진압 한곳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인민 영웅 기념비가 서 있는데 높이가 38메타의 석조 오벨리스크다.

정면에는 모택동이 쓴 글씨라는데 인민 영웅 영 000 인데 한문이라 읽을 수가 없다 뒷면에는 주은래가 썼다는데 모두 한문이라......졉

기념비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는데 문화혁명 직후 주석이던  하국봉이 2억원의 국비를 투자하여 지은 것이고 중앙실에는 모택동 유해가 오성 홍기로싸여 안치되었다하는데

일정한 날 개방한다는데 오늘은 볼 수가 없었다 (쏘련 붉은 광장 레닌 기념당과 같은 것같다 들어서면 말도 할 수 없고 사진 촬영도 안되고 멈춰 설 수도 없고 감시가 엄격하다)

광장 서쪽에는 전국 인민 대회당이 있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과 같다한다

동쪽으론 노동인민문화궁이 있다 이곳은 옛날에 황제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라 하는데 지금은 극장 체육관등이 세워져 있고 건물 내부도 모두 개조되었다

그리고 서쪽에는중산 공원이 있는데 예전에는 사직단으로 황제가 풍년을 빌던 곳이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명 나라때 지은 중산당이라는 건물도 있다

광장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북쪽에 있는 천안문으로 이동하였다 이곳 가운데 문을 들어서면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자금성 (황궁)으로 들어섰다

동서750메타 남복으로 1,000메타 의 장방형으로 72만평방 메타로 사방 이 높이 10메타의 성벽으로 둘러 싸였으며 그 밖으로는 50메타의 수로가 지나가고 있다

오문(午門)은 높이가 37.95m, 벽의 두깨는 36m나 되는 크기로 문이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성벽같았다.

오문을 들어서면 고궁의 외조이다. 외조(外朝)는 전삼전(前三殿)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을 이르며 국가적인 행사와 의식이 행해젔던 곳을 말한다.

오문을 지나 백대리석으로 된 내금수교를 건너면 태화문(太和門)이 있고 태화문을 지나면 영화 '마지막 황제'의 부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태화전(太和殿)이 보인다.

영화에서 보다 실제로 보니 정말로 엄청났다.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은 백대리석으로 만들어진 3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즉위식, 출수(出帥)의식, 원단(元旦)의 경축, 탄생일 축전, 동지(冬至) 의전등이 행해졌던 장소로 중앙에서 약간 안쪽으로 보좌가 있다.

황제의 색깔인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태화전의 내부는 당시 황제의 권위를 어느정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태화전은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이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라고 한다.

정사는 주로 내정에서 보았는데 내정(內廷)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등을 가르킨다.

우리는 태화전 옆의 쪽문을 통해 태화전 뒤쪽으로 나왔다.

뒤에는 중화전이 보이는데 중화전(中和殿)은 정방형의 건물로 국가행사시 내정에서 나온 황제가 휴식하거나 신하들의 축사를 받는 곳이라고 한다.

태화전에 비해 조금 수수한 보좌가 있다. 청조 역대 인새가 전시되어 있다. 중화전 뒤쪽으로는 보화전(保和殿)이 보이는데 이중식 지붕을 하고 있는 궁전으로 섣달에 대연회와 과거의 진사 시험 중 하나인 '전시(殿試)'가 여기서 행해졌다고 한다.

동쪽과 서쪽으로 높은 담이 있는데 이것이 외조와 내정을 구분하는 벽이다. 보화전을 지나면 정무를 보거나 황후나 궁녀들이 일상생활을 했던 내정이다.

보화전 뒤쪽에는 자금성 최대의 조각상이 있는데 길이 16.59m, 폭3.07m, 무게 약250톤으로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용인 서운.수산복해 등이 새겨져있다.

이 용은 황제의 상징이라고 한다. 보화전 뒤쪽으로 내정의 입구인 건청문(乾靑門)이 있고 문을 들어서면 내정삼궁이라 불리는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이 순서대로 위치해 있다. 건청궁(乾靑宮)의 중앙에는 보좌가 놓여있고 그 앞에는 책상이 놓여있어 이곳이 황제가 정사보는 곳임을 한눈에 알수있었다.

교태전(交泰殿)은 외조의 중화전과 마찬가지로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황후의 탄생축하가 행해졌다고 한다.

보좌는 간소했고 보좌 양쪽으로 시계가 있었다. 우리는 교태전을 지난 곤녕궁으로 향했다.

곤녕궁(坤寧宮)은 궁중의 제례와 혼례장소로 침실을 직접 볼수있었다. 우리는 곤명궁을 지나 어화원(御花園)을 지나쳐 신무문에 도착하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자금성에서 나무가 없는데 자객의 위험이 있다고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웅장하지만 자연과 조화를 생각하지 안은 자금성은 우리나라의 궁에 비해 삭막해 보인다.

장시간의 행군에 지쳐 한참을 벤치에 앉자 쉬었다. 자금성의 동쪽 시작인 오문을 시작으로 북쪽끝인 신무문까지 직선으로 지나왔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

쓸줄 모르는 글을 생각없이 막 나열 하려니 두서도 없고

좀 조잡한 것 같다 띄어쓰기도 틀리고 항상 틀리게 쓰지만 특히 철자도....

난 아직도 독수리 타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이해하여 주시길.....

2006/07/15 21:17 2006/07/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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